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리사 수, 나델라, 이재용의 10년 [윤민혁의 실리콘밸리View]
사내칼럼
2024.10.13 17:52:57
이달 8일(현지 시간) 리사 수 AMD 최고경영자(CEO)가 취임 10주년을 맞았다. 이틀 뒤 열린 ‘AMD 어드밴싱 AI 2024’는 취임 10주년 기념식을 방불하게 했다. 키노트 마지막에 “신제품 공개로 10주년을 맞이하는 것만큼 좋은 일은 없다”는 수 CEO의 소감에 객석에서는 뜨거운 환호성과 박수갈채가 터져 나왔다. 부도 직전이던 AMD를 다시 살려내고 더 나아가 인텔과 엔비디아의 독주 체제로 굳어가던 중앙처리장치(CPU)·그래픽처리장치(GPU) 시장에 경쟁을 되살린 수 CEO에게 보내는 찬사다. 그때나 지금이나 AMD는 2인자이지만 존재감만큼은 1인자 못지않다. 과거 AMD는 빈약한 제품 경쟁력으로 외면받던 기업이었다. 당시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0%. “인텔이 반독점 소송을 피하고자 AMD를 살려둔다”는 조롱이 나왔을 정도다. 수 CEO가 사령탑을 맡은 뒤 AMD는 발상의 전환과 합리적 가격 정책으로 기회를 만들어냈다. 취임 직후에는 ‘니치 마켓’으로 외면받던 게임기 칩셋을 독점 공급해 숨통을 틔웠다. 부활의 기치가 된 ‘라이젠’ CPU는 연산 코어 수를 대폭 늘려 인텔의 허를 찔렀다. GPU에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최초로 도입한 회사도 AMD다. 10년이 지난 현재 AMD의 서버용 CPU 시장점유율은 31%에 달한다. 엔비디아가 독주하던 AI 가속기 시장에서는 유일한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인텔은 ‘캐시카우’이던 서버용 CPU 점유율 하락으로 초유의 적자를 기록하며 창사 이래 최대 위기에 처했다. 2014년 10월 8일 수 CEO 취임 당일 3.28달러에 불과했던 AMD 주가는 현재 167달러에 달한다. 올해 10주년은 맞은 빅테크 CEO가 한 명 더 있다. 2014년 2월 취임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MS) CEO다. 당시 MS는 암흑기를 지나고 있었다. 전임 스티븐 발머 CEO 시절 무리하게 추진한 노키아 모바일 사업부 인수와 ‘윈도우폰’은 최악의 패착으로 돌아와 모바일 시대 패권을 애플·구글에 내줬다. 오랜 폐쇄적 생태계 전략에 ‘파트너’인 개발자들마저 MS를 외면하고 있었다. 나델라 CEO는 MS를 클라우드·개방형 생태계 중심 기업으로 변모시킨다. 윈도우와 오피스 단건 판매에 주력하던 MS는 나델라 산하에서 애저(Azure)와 구독제 오피스365를 기반으로 한 클라우드 기업으로 재탄생했다. 오픈AI를 발굴해 생성형 AI 시대 최선두 기업이 된 것은 화룡점정이다. 고루하게 낡아가던 MS는 다시금 애플과 시가총액 1위 다툼을 벌이고 있다. 나델라에게는 “빌 게이츠에 이은 MS의 제2 창업자”라는 찬사가 따라붙는다. 2014년은 한국 경영계에도 풍파가 일었던 해였다. 그해 5월 고(故) 이건희 삼성그룹 선대회장이 쓰러졌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역시 올해가 ‘실질적 취임’ 10년째인 셈이다. ‘외계인을 고문한다’는 찬사를 받으며 메모리·모바일·TV 등 주력 사업에서 세계 1위를 달리던 삼성전자의 지위는 위태롭기만 하다. ‘사업보국’을 상징하던 메모리 기술력은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뛰어난 공정 역량으로 애플 A 시리즈 칩셋을 도맡던 파운드리는 TSMC와 격차를 좁히지 못하고 있다. 모바일에서는 애플과 중국 기업들 사이에 끼인 신세로 1위 수성이 위태롭다. TV 시장에서는 ‘19년 연속 1위’를 넘보고 있으나 TV는 더 이상 첨단전자제품이 아니다. ‘초격차’를 부르짖던 삼성전자에서 대표이사 명의의 사과문이 나올 정도다. 갑작스러운 승계, 뒤이은 사법 리스크 등 잇따른 불운이 타이밍마다 발목을 잡았던 점은 지금도 안타깝다. 이제 사법 리스크도 마무리 단계다. 30년 전 이 선대회장은 ‘신경영 선언’과 ‘애니콜 화형식’으로 초일류 삼성의 시작을 알렸다. 수성의 리더가 아닌 개척의 리더로서 이 회장의 신경영을 보여줄 때다.
윤홍우의 워싱턴 24시
'흑인 여성' 대통령이라는 심리적 마지노선[윤홍우의 워싱턴 24시]
정치·사회
2024.10.06 19:03:01
백인 남성 알 해리슨 미국 항공우주국(NASA·나사) 국장이 커피포트에 붙은 유색인종이라는 스티커를 떼어내고 유색인종 화장실 간판을 망치로 부순다. 지독한 차별에 시달리던 흑인 여성 전산원 캐서린 존슨은 천부적인 재능을 발휘해 나사의 유인 우주선 프로젝트 ‘머큐리 계획’에 힘을 보탠다. 1950년대 말 실화를 바탕으로 2016년 제작된 영화 ‘히든 피겨스’에서 나오는 장면이다. 지난달 미국 의회는 이 영화의 모티브가 된 실존 인물들에게 의회 금메달을 수여했다. 캐서린 존슨, 도로시 본, 메리 잭슨, 크리스틴 다든을 비롯해 수학자·엔지니어 등으로 활약하며 우주탐사에 기여한 여성들이 영예를 안았다.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은 “이들은 미국의 강점이 모든 시민의 재능을 활용하고 분열을 넘어 미래를 바라보는 능력에 있다는 사실을 증명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냉정하게 따지고 보면 당시 흑인 여성들의 인간 승리가 미국에서 조망받기까지 반세기가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만큼 미국 사회에서 인종 갈등은 뛰어넘기 힘든 문제다. 물론 지금 미국은 표면적으로 차별이 사라졌고, 흑인 여성들의 인권도 크게 신장됐다. 하지만 직장 동료나 친구로서가 아니라 흑인 여성 대통령을 떠올리면서 머뭇거리는 미국인들을 많이 만난다. 미국이 과연 이 심리적 마지노선을 넘을 수 있느냐를 가늠할 ‘세기의 선거’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 올해 미 대선에는 인플레이션·이민·낙태 등 표심에 영향을 끼치는 수많은 이슈들이 있지만 쉽게 입 밖으로 꺼내 놓지 않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바로 민주당 후보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이 흑인 여성이라는 점이다. 그 어떤 여론조사도 대놓고 해당 주제를 두고 유권자의 호불호를 조사하지 않는다. 하지만 미국 내 많은 선거 전문가들은 바로 이 문제가 미국 사회 주류인 백인 남성들의 표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본다. 송원석 한인유권자연대 사무국장은 “‘미국이 흑인 여성을 대통령으로 뽑을 준비가 돼 있느냐’라는 질문은 이번 선거에서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화두”라며 “이를 의식해 해리스는 본인의 인종과 성별에 대한 언급을 의도적으로 피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다”고 짚었다. 해리스의 선거 캠페인을 봐도 그가 얼마나 백인 남성 표를 의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대표적으로 해리스가 선택한 러닝메이트(부통령 후보) 팀 월즈 미네소타 주지사는 재향군인에 풋볼 코치 출신으로, 러스트벨트(쇠락한 공업지대)의 블루칼라 남성들을 끌어오기 위한 맞춤형 인선이다. 대선을 한 달 앞두고 해리스 캠프는 경합주를 중심으로 남성들이 즐겨 찾는 메이저리그, 대학 풋볼, 축구 경기 등에 천문학적 광고 비용을 투입하고 있다. ‘해리스를 위한 백인 남성들’이라는 단체까지 출범했는데 이는 백인 남성들을 설득하는 것이 해리스 입장에서 매우 절박한 문제라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1~2% 지지율만으로 승패가 바뀌는 초박빙 구도의 선거에서 해리스의 성별과 인종을 바라보는 백인 남성들의 복잡한 시선이 선거 당일에 어떻게 분출할지 미 정치권이 주목하는 이유다. 특히 대선 승패를 좌우할 최대 경합주 펜실베이니아는 백인 비율이 80%에 달해 낙후된 교외 지역의 블루칼라 남성들을 붙잡지 않고는 이길 수 없다. 펜실베이니아는 2016년 트럼프를 찍었다가 2020년 다시 조 바이든으로 돌아섰는데, 그 배경 중 하나로 바이든이 ‘펜실베이니아 출신의 백인 남성’이었다는 점이 지목된다. 이런 이유로 다수의 전문가는 현재 박빙 판세가 여전히 해리스에게 불리한 형국이라고 보고 있으며 해리스 역시 자신을 ‘언더독’으로 칭하고 있다. 전직 미 당국자는 “해리스가 흑인 여성 대통령이 되면 그것만으로 끝나지 않는다”면서 “내각과 백악관과 국가 요직의 인종과 성별이 바뀔 것이다. 주류 백인들이 이를 감내할 수 있느냐가 이번 선거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는 중대한 변수”라고 말했다.
김광수의 中心잡기
韓中 관계 개선해야 '차이나포비아' 벗어난다 [김광수특파원의 中心잡기]
사내칼럼
2024.09.22 18:43:59
최근 수십 년간 중국이 급속도로 발전했지만 우리 국민들에게 중국의 이미지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지인들과의 대화나 오픈채팅방,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등에서 “중국 여행을 가는데 치안은 어떤가요?” “밤 늦게 돌아다녀도 괜찮을까요?” 등의 질문을 종종 접한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종식되고 중국 여행을 희망하는 사람이 늘면서 이런 궁금증을 지닌 사람들이 부쩍 많아졌다. 중국 경험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주재원이나 유학생으로 생활해야 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다. 이들에게 중국은 우리와는 다른 점이 너무 많아 불안과 불편이 공존하는 국가다. 특히 올 6월 말 국가정보원이 낸 보도 자료는 걱정을 넘어 공포를 안겨줬다. 당시 국정원은 7월부터 반간첩법(방첩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중국에서 사용이 금지된 페이스북·인스타그램·카카오톡 등을 공개적으로 이용할 경우 불심검문 대상이 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이후 대부분의 한국 언론은 이를 기사화했고 기정사실이 됐다. 틀린 내용은 아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도한 해석이다. 문제가 될 경우 불심검문과 수색을 할 수 있는 규정을 명확히 했을 뿐 일반인이 중국에서 위법행위를 하지 않는 한 크게 달라질 것도, 걱정할 일도 없다. 하지만 해당 기사는 중국을 찾는 한국인에게 회자되며 ‘혹시 내가 중국에서 카카오톡을 사용하면 검문 대상이 되고, 처벌을 받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이 우리 국민의 불안을 증폭시키고 있다. 이달 18일 중국 광둥성 선전시에서 10세 일본인 초등학생이 중국인 괴한의 흉기에 찔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안타깝게도 다음날 사망했다. 등교길에 벌어진 참혹한 사건에 일본인은 물론 중국에 거주하는 외국인 모두 큰 충격에 빠졌다. 앞서 올 6월에도 장쑤성 쑤저우에서 중국인 남성이 하교하는 자녀를 맞으러 나간 일본인 모자 등 3명에게 흉기를 휘두른 사건이 발생해 일본인의 공포는 극에 달한 상태다. 일부 회사는 주재원 파견 제도를 축소 또는 중단하려는 움직임이 포착된다. 이번 피습 사건이 벌어진 날이 1931년 일제가 만주 침략 전쟁을 개시한 만주사변(9·18사변) 93주년이라는 점에서 일본에 적개심을 드러낸 행동이라는 해석도 나오지만 현지 주재 외국인들에게는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 사건’이라는 인식이 생겼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최근 축구선수 손준호 사건까지 회자되며 불안감을 키우고 있다. 중국 프로팀에서 선수 생활을 하던 손준호는 한국으로 귀국하려다 체포돼 약 10개월간 공안에 구금됐다가 풀려났다. 최근 중국축구협회가 손 선수에 대해 승부 조작 혐의로 ‘영구 제명’ 징계를 내리면서 기자회견이 열렸고 당시 어떤 일이 있었는지 세상에 알려졌다. 손 선수의 주장에 따르면 자신은 잘못이 없지만 공안의 협박에 못 이겨 거짓 자백을 했고 한국에 빨리 돌아오기 위해 법정에서도 유죄를 인정했다고 한다. 중국 측과 손 선수 측의 주장이 엇갈리지만 이번 이슈는 중국에 거주하는 교민이나 주재원 등이 혹시라도 중국에서 잘못된 일로 수사를 받게 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된다고 다짐하게 되는 계기가 됐다는 점만큼은 분명하다. 더 나아가 중국에서 일이 잘못돼 불리한 상황에 처했을 때 우리 정부가 나와 내 가족을 보호해줄 수 있는가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최근 양국 교류가 활발해지며 내년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에서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게 점쳐진다. 최근 비중이 다소 줄기는 했지만 여전히 중국은 우리나라의 주요 교역 상대국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승부해야 하는 우리 기업들이 포기할 수 없는 최대 시장 중 하나이기도 하다. ‘차이나포비아’를 잠재우고 우리 정부가 국민을 지킬 힘과 의지가 있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도록 한중 관계 개선이 시급하다. 때마침 북한과 중국 간 관계가 멀어지는 지금이 최적의 타이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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