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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챌린저호의 대탐험

1876년 해양탐사 마치고 귀항

[오늘의 경제소사] 챌린저호의 대탐험
영국의 윌리엄 프레드릭 미첼이 그린 ‘챌린저호’.

1876년 5월24일 영국 남부 햄프셔주 스핏헤드. 전 세계 해양 조사에 투입된 2,137톤급 기범선 챌린저호(HMS Challenger·사진)가 돌아왔다. 1873년 크리스마스 직전 포츠머스 군항을 출항한 지 3년 반 만에 귀항하기까지 챌린저호는 전인미답의 기록을 세웠다. 대서양과 희망봉, 인도양과 일본 근해, 태평양을 가로질러 남극해와 남미 극단을 돌아 영국으로 돌아오기까지의 항로만 12만7,580㎞. 곳곳을 헤집고 다니느라 지구 둘레(4만76㎞)의 세 배가 넘는 바닷길을 달렸다.

챌린저호가 이전의 해양 탐사와 달랐던 점은 해저 발굴. 당시 사람들은 심해에 생물이 살지 않는다고 여겼다. 깊은 바다에 내린 닻줄에 붙은 생물체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챌린저호는 바다가 상상 이상으로 크고 깊으며 다양한 생물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362개 기지에서 탐험 자료를 모으고 492개 지역 바다의 깊이를 정밀 측정했으며 133개 지역의 해양 퇴적물과 암석을 채취했다. 4,717종의 생물종도 새로 찾아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마리아나해구의 존재도 처음으로 알렸다.

챌린저호의 탐험은 해양사 최대의 발굴로 손꼽힌다. 근대 해양학의 시작을 알렸을 뿐 아니라 자료의 방대함과 정확도로도 유명하다. 승선한 과학자들은 북극해를 제외한 전 세계 바다의 수온과 해류, 깊이와 생물 분포 자료를 50권짜리 보고서로 남겼다. 영국 왕실에서 20만파운드를 지원받은 왕립학회와 해군이 정리한 ‘챌린저호 항해의 과학 탐험 결과 보고서’는 요즘도 학술지에 인용될 만큼 정확성과 권위를 인정받는다.

영국의 챌린저호 탐험은 거대한 항적을 남겼으나 바다에 대한 도전이라는 측면에서는 수많은 점의 하나일 뿐이다. 투자와 도전이 전부터 많았다는 얘기다. 정확한 해상시계를 만들기 위해 아이작 뉴턴까지 참여하고 수많은 함선을 세계로 보냈다. 찰스 다윈으로 하여금 ‘종의 기원’을 저술하게 만든 항해에 투입된 비글호(HMS Beagle)와 동형인 체로키급(238톤)을 영국은 104척이나 건조해 전 세계를 샅샅이 훑었다.

챌린저호의 빛나는 성과 뒤에는 고귀한 인명의 희생이 깔려 있다. 출항 당시 챌린저호에는 과학자와 해군 장병 216명이 승선했으나 사망과 탈영·질병에 따른 하선으로 144명만 배를 타고 돌아왔다. 비슷한 시기 조선은 암흑으로 빨려 들어갔다. 영국에서 건조된 243톤급 일본 기범선 운요호의 포함외교에 의한 강화도조약 체결 시기가 챌린저호의 귀항 직전이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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