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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줄서기의 품격

김성규 세종문화회관 사장

  • 2019-05-27 10:44:22
  • 사외칼럼
[로터리]줄서기의 품격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1년 365일, 하루 24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과 형태가 달라진다.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스스로의 선택에 따라 오롯이 사용하기는 어렵지만 난 많은 일정을 원활히 소화하기 위해 시간을 쪼개가며 알차게 보내려 노력한다. 아침 일찍 출근하고 밤늦게 귀가하는 생활이 일상인 요즘 집과 공연장을 오가는 길 위에서 보내는 시간이 많다. 자가용을 이용한 출퇴근길이 막히면 급한 마음이 들고는 하는데 운전하면서 꼭 하지 않겠다고 다짐한 것이 바로 끼어들기다.

나들목 진입로가 정차돼 차들이 꼬리를 물고 서 있는 상황에서 누군가가 나의 차를 빠르게 지나쳐 끼어든다면 물론 그 차는 나보다 더 빨리 정체구간을 벗어날 것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들이 도로 위의 ‘유령정체’를 만들어낸다. 누군가가 끼어들기를 하면 후방차량의 운전자는 급격히 속도를 줄이게 되고 뒤따라오던 차들 역시 연이어 브레이크를 밟으며 속도를 줄이게 된다. 이것이 2~3㎞에 걸쳐 반복되다 보면 한참 뒤에서 오던 운전자는 영문도 모른 채 멈추고 결국 길은 막힌 상태가 되는 것이다.

좀 과격한 생각일 수도 있지만 50대의 차량을 앞질러 끼어들기를 해 5분을 빨리 갔다면 그 5분은 절대적인 시간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50명의 운전자의 시간을 각각 6초씩 훔쳐 본인의 것으로 만든 결과이다. 남의 물건을 탐해서는 안 되고 아이디어나 창작물을 도용해도 안 되는데 심지어 시간을 가로챈 것이다. 그렇기에 길을 잘못 들어 어쩔 수 없이 끼어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의도적인 끼어들기는 아예 생각하지도 않는다.

도로 위의 정체를 해결하는 방법은 제대로 줄을 서 운전하는 것이다. 모든 차가 간격을 유지하며 일정 속도로 주행한다면 유령정체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급히 차선을 변경하다가 사고를 낼 확률도 줄어든다. 차선변경이 가능한 구간이었을지라도 끼어들기를 하다 사고가 날 경우 끼어든 운전자의 과실은 70%이며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았거나 급하게 들어올 경우는 그 과실이 90%까지 높아진다. 진로변경이 금지된 구간은 끼어든 운전자의 과실이 100%이다.

공연장에서나 영화관·마트에서도 줄을 서다 보면 내가 서 있는 줄보다 옆의 줄이 더 빨리 줄어드는 것 같은 기분이 들고는 한다. 조금이라도 빨리 진행하고자 옆의 줄로, 또 옆의 줄로 자리를 옮길지라도 원래 서 있던 자리보다 빨리 차례가 돌아올지는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끼어들기를 하지 않는다. 모두 차분히 줄서기를 하며 자신의 차례를 기다린다. 서로의 시간을 존중하는 품격 있는 줄서기가 길 위에서도 확산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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