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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호한 배임죄 기소 日의 150배...증거 없으면 '별건수사'로 몰아

[기업하기 어려운 나라]
<2> 사법당국의 기업 길들이기
'한번걸려라'식 무리한 적용...형량은 살인죄 버금
횡령·배임죄 1심 무죄율 5.8%·특경법 10% 넘어
정권 바뀔때마다 되풀이..."이래서 기업 하겠나"

모호한 배임죄 기소 日의 150배...증거 없으면 '별건수사'로 몰아

지난 2015년 12월 검찰은 이명박 정부의 자원개발비리를 겨냥해 강영원 전 한국석유공사 사장에게 1심에서 징역 7년을 구형했다. 자원개발비리 수사 ‘1호’로 떠들썩했던 강 전 사장의 혐의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죄였다. 2009년 캐나다 석유개발 업체 하베스트를 인수하는 과정에서 ‘독단적 결정’으로 석유공사에 5,500억원의 손해를 끼쳤다는 게 검찰의 주장이다. 그러나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경영상 판단 과정에 과오는 있지만 석유공사가 아닌 강 전 사장 개인에게 책임을 묻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며 1심 재판부와 항소심은 무죄 판결을 내렸다.

기업을 멍들게 한 사법당국의 ‘엿장수 마음대로’ 식 배임죄 적용에 대해 법원에서 제동이 걸리는 사례가 빈번해지고 있다. 131억원 횡령·배임 혐의로 기소된 이석채 전 KT 사장도 결국 항소심에서는 배임 혐의를 벗었다. 2,843억원을 계열사에 부당지원한 혐의(배임) 등으로 기소됐던 강덕수 전 STX그룹 회장 역시 항소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풀려났다.

국내 사정기관의 ‘기업 길들이기’ 수사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무한 반복되고 있다.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의 무리한 배임죄 적용은 물론 기업 망신주기 식의 악의적 별건 수사가 끊이지 않아 기업 경쟁력만 죽인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배임죄 적용은 검찰의 기업 표적수사에서 대표적 기법으로 꼽힌다. 특히 횡령·배임액수가 50억원을 넘을 경우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이 적용돼 ‘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을 선고하게 돼 있는데 대규모 투자를 결정하는 대기업 경영진의 경우 이 기준을 넘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형선고가 사실상 사라진 점을 감안하면 살인죄(사형·무기 또는 5년 이상 징역)와 동등한 처벌 기준이라 큰 잘못이 없는 대기업을 혼쭐내는 데 배임죄만큼 유용한 게 없다는 평가다.

실제로 대검찰청에 따르면 검찰이 횡령·배임죄로 매년 기소하는 기업인은 무려 3,000~5,000명(약식기소 포함)으로 연평균 1,500건에 달한다. 우리와 비슷한 법령체계를 가진 일본에서는 매년 배임죄 기소 건수가 10건 이하에 불과하다. 우리 검찰의 기소가 150배 이상 많은 것이다. 법조계에 따르면 배임죄를 형법으로 다스리는 나라도 독일·스위스·오스트리아 등 독일계 국가와 일본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일본의 경우 ‘명백히 손해를 가할 목적’이 있어야 처벌하는 등 엄격히 법을 적용하며 독일은 ‘경영 판단의 원칙’을 포함해 균형을 맞추고 있어 기소 건수가 매우 적다.

검찰의 무리한 배임죄 적용은 재판 단계에서 해당 혐의에 대한 무죄 선고율이 유독 높다는 사실로도 증명된다. 대법원에 따르면 지난해 1심 기준으로 일반 횡령·배임죄의 무죄율이 5.83%에 달해 2007년의 3.66%보다 2%포인트 이상 급등했다. 이는 2017년 일반 형사범죄 무죄율 평균 수치인 3.35%를 한참 웃도는 수준이다. 심지어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과 관련한 횡령·배임 혐의 무죄율은 매년 10%가 넘는다는 후문이다.

수사 성과를 확보하기 위한 검찰의 악의적 별건 수사 관행에대한 개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특히 최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국정농단 대법원 판결을 앞두고 검찰이 별건인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 의혹 사건을 활용해 여론전을 벌이는 것이 대표 사례로 꼽힌다. 검찰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후신인 삼성전자 사업지원TF 수장이자 이 부회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정현호 사장을 11일 소환하면서 그가 어떤 말을 했는지까지 언론에 일일이 흘리는 행태를 보였다.

배성로 전 동양종합건설 회장이 13일 서울고등법원 형사3부(배준현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항소심에서 횡령 혐의로 1심과 같이 징역 2년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은 사건도 별건 수사의 결과다. 표면적으로는 배 전 회장의 잘못을 법원이 인정한 것으로 보이지만 당초 검찰 수사는 전혀 다른 방향에서 출발했다. 검찰은 배 전 회장이 해외 현장에서 300억원 규모의 비자금을 조성해 포스코 고위층이나 이명박 정부 실세 등에 대한 로비자금으로 썼을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아무런 증거가 나오지 않자 별건 수사를 벌여 기소했다. 그마저도 1·2심에서 공소사실 9개 중 8개 혐의가 무죄로 판명됐다.

2017년 ‘문재인표 방산비리 1호 수사’로 진행된 한국항공우주산업(KAI) 비리 수사는 싹쓸이 수사에도 단서가 나오지 않자 돌연 ‘경영비리’로 이름을 바꿨다. 2016년 ‘롯데 비자금 조성 의혹’ 수사는 이제 ‘롯데 경영비리’로 간판을 바꿔 재판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그룹 2인자인 이인원 부회장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극이 발생했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검찰은 법리적으로 혐의 증명이 어려우니까 악의적 관행을 지속하는 것”이라며 “검찰의 별건 수사에 대해 법원의 무죄 선고율은 물론 압수수색영장 기각률도 높아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일각에서는 배임죄를 폐지하고 재산상 피해에 대한 손해배상청구 수위를 높이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판사 출신 변호사는 “기업인을 배임 명목으로 형사처벌해 우리 사회가 얻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 의문”이라며 “손해를 당한 사람 입장에서는 차라리 강력한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통해 경제적 이득을 돌려받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윤경환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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