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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상논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한국국제통상학회 회장
'日수출규제' 넋놓고 뒤통수 맞은꼴
동맹국인 美도 우리편만 들수 없어
감정 내세우기보다 외교해법 절실

  • 2019-07-14 17:04:43
  • 사외칼럼
[백상논단]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강인수 숙명여대 교수

2008년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라는 영화가 상영된 적이 있다. 열차털이범과 마적단 두목, 현상금 사냥꾼이 무법천지 만주의 축소판인 제국열차에서 지도 한 장을 놓고 서로 물고, 물리는 예측불허 상황이 전개되는, 668만명이 관람할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작품이다. 대한민국 대표 연기자들이 주연을 맡아 호연을 펼친 것이 인기를 끈 이유겠지만, ‘놈·놈·놈’이라는 단어가 흥미를 유발한 측면도 있다. 이 영화가 불현듯 떠오른 것은 최근 우리나라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누가 좋은 놈인지, 누가 나쁜 놈인지, 누가 이상한 놈인지 헷갈리기 때문이다.

지난 1일 일본이 갑자기 한국에 대해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핵심 소재인 포토레지스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에칭가스 3품목의 수출통제 조치를 발표했다.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일본은 전략무기 개발에 이용될 수 있다고 판단되면 당국이 직접 수출을 통제하는 캐치올 규제(catch-all controls) 상 혜택을 받는 27개 ‘화이트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내부 절차를 밟고 있다. 이미 3개 품목에 대한 수출통제만으로도 큰 타격이 예상되는데 오는 8월 중순부터 2차 수출통제가 시작되면 1,000개가 넘는 첨단제품이 적지 않은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일본이 즉흥적으로 이런 결정을 내린 것 같지는 않다. 일본 입장에서는 지난해 10월에 한국 대법원이 징용공 문제에 대한 배상 판결을 내린 후 한국정부가 위안부를 위한 ‘화해 및 치유재단’의 설립 허가를 취소하고, 일본 자위대의 저공비행 문제 등 한일 간의 마찰과 대립을 심화시키는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자 ‘한국을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규정하고 안보를 이유로 한국에 대해 보복조치를 취한 것이다. 선거라는 정치적 동기뿐 아니라 시스템 반도체 육성을 추진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기선 제압 등 여러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 입장에서는 별다른 대책 없이 뒤통수를 맞은 꼴이 돼버렸기 때문에 감정적으로 일본을 정말 나쁜 놈이면서 동시에 이상한 놈으로 보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세계 1등이라고 자부하던 반도체마저도 생산가치사슬이 너무 취약하다는 것을 온 국민이 알게 됐다.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도 많은 노력을 하고 있다. 그런데 잘 해결될 것 같다는 믿음이 생기질 않는다. 정치적 문제로 촉발된 사태를 세계무역기구( WTO) 제소 등 통상적 관점에서 해결하려는 것이 답이 되기 어렵다는 것 말고도, 외교적 해법을 모색하는 방식도 어설퍼 보이기 때문이다. WTO 제소는 GATT 11조, 21조 등의 조항 위배 여부와 관련해 다툼의 여지가 있고 상소기구가 사실상 무력화돼 있어 단기적인 해결책이 되기 어렵다. 특히 안보를 이유로 한 조치의 예외인정 문제는 쉽게 입증할 수도 없다. 국제적으로 일본에 대한 비판 여론을 조성할 수는 있겠지만,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을 끄기는 어렵다.

미국에 중재 역할을 부탁하는 것이 분명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미국이 쉽게 우리 요구를 받아줄 것 같지도 않다. 해리 해리스 주한 미 대사가 12일 미국의 개입 시점에 대해 “미국 기업이나 안보에 영향을 줄 때”라고 언급한 것이 이 문제에 대한 미국의 입장을 잘 보여주고 있다. 미국이 마냥 우리 편만 들어주는 ‘좋은 놈’이 아니라는 것은 최근 미중 간 패권전쟁 과정에서 불거진 ‘화웨이’ 사태를 통해 잘 알 수 있다. 중재를 요구한 우리에게 미국이 ‘공짜 점심은 없다’는 것을 보여줄 가능성도 커 보인다. 혹 떼려다 혹 붙여오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양국 정상 간 대화를 통해 통 크게 해법을 모색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

국제사회에는 영원히 ‘좋은 놈’도, ‘나쁜 놈’도, ‘이상한 놈’도 없다. ‘감정’을 내세우는 것도 도움이 될 것은 없다. 당연한 말이지만 외교적인 해결 노력과 더불어 우리의 가치를 높이는 길만이 살길이다. 이번 사태가 우리 경제가 퀀텀점프를 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상의 전환이 이뤄지는 계기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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