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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가 된 파독간호사...'35년 예술' 회고하다

재독화가 노은님 4년만에 개인전
프랑스 중학 교과서 실린 작품 등
80~90년대부터 최근까지 총망라
11월엔 獨서 '노은님 전시관' 열어

화가가 된 파독간호사...'35년 예술' 회고하다
화가 노은님./이호재기자.

화가가 된 파독간호사...'35년 예술' 회고하다
노은님의 2019년작 ‘어떤 봄날’ /사진제공=가나아트

이게 동물인가, 식물인가. 나뭇잎인 성 싶던 것이 쫑긋 솟은 토끼 귀인가 하면, 커다란 나뭇잎 배 되어 사람을 태우고 흘러간다. 바닥에 툭 떨어진 나뭇가지는 흙 위를 꾸물꾸물 기는 지렁이가 되기도 한다. 새싹처럼 보이던 것이 이내 날개 파닥이는 어린 날짐승으로 여겨지는 순간, 옅은 미소와 함께 깨달음이 스친다. 움튼 싹과 날갯짓 배우는 새는 크게 다르지 않다는. 여우와 오리가 한몸이고, 벌인지 꽃인지 모를 생명체가 공존한다. 무엇인들 어떠랴.

재독화가 노은님(73)이 4년 만의 국내 개인전을 통해 신작들을 선보였다. 종로구 평창동 가나아트센터에는 1980~1990년대 대작부터 최근작까지 30점을, 용산구 한남동 가나아트한남에는 소품 등 평면 회화 60여 점과 테라코타 조각 20여 점을 전시 중이다. 둘을 합치면 35년 이상의 예술세계를 총망라 한 회고전이 된다.

노 작가는 지난 1970년 파독 간호사 신분으로 독일에 갔다가 화가로 뿌리를 내린 입지전적인 인물이다. 독일 국립 함부르크미술대학에서 수학하며 백남준과 요셉 보이스 등 당대 플럭서스 작가들과 교류했고 바우하우스, 베를린 세계 문화의 집, 베를린 도큐멘타, 국제평화비엔날레 등에 초청됐다. 국내 여성작가 최초로 독일 국립 함부르크 조형예술대학의 정교수로 임용돼 현지에서 후학을 양성했으며 지금은 서울여대 석좌교수로 있다. 그의 1986년작 ‘해질 무렵의 동물’은 카프카의 소설 ‘변신’과 나란히 프랑스 중학교 문학 교과서에 수록됐다. 노 작가의 작품은 추상표현주의 경향으로 분류될 수 있으나 묘한 독창성으로 자신만의 세계를 구축했다. 자연을 근간으로 인간을 결합해 보여주되 어린이까지 몰입하게 만드는 순수성이 특징으로 꼽힌다.

화가가 된 파독간호사...'35년 예술' 회고하다
노은님 ‘나무가 된 사슴’ /사진제공=가나아트

화가가 된 파독간호사...'35년 예술' 회고하다
노은님 ‘큰 머리 동물’ /사진제공=가나아트

지난 19일 개막식에서 만난 작가는 자신이 그림 그리는 일을 ‘낚시’에 비유해 “낚시꾼이 어떤 때는 물고기를 한 마리도 못 잡고 어떤 날은 많이 잡는 것처럼 그림도 마음먹고 억지로 한다고 그려지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굳이 도가 사상이나 물아일체를 언급하지 않아도 “무엇이 우연이고 무엇이 인연이고 필연인지를 알고 싶어 그린다”는 작가의 말에서 공존·공생의 지혜가 엿보인다. 그는 “역마살이 잔뜩 꼈는지 세상 곳곳 돌아다니는데 단순하면서도 편한 원시적인(primitive) 것을 좋아해 어느 나라든 민속박물관 먼저 찾아간다”면서 “우리 인간의 삶은 잠시 왔다 가는 것이지만 동식물이 다 같이 살아가는 이 지구는 영원하다는 생각을 한다”고 했고, 그 깨우침을 화폭에 담았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그림 속 생물체에 대해서는 “내가 그리는 동물은 그 옛날 살았던 동물일 수도 있고 먼 훗날 나타날 동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고 설명했다.

노 작가는 그림 외에도 함부르크의 한 공원에서 나뭇가지와 종이로 만든 나뭇잎을 실제 나무에 매달거나 합판으로 만든 강아지를 끌고 산책 다니는 퍼포먼스 등으로 인공과 예술과 자연이 교차하는 장면을 보여줬다. 1984년작 ‘생명의 시초’는 이리저리 움직이는 힘의 흐름을 추상적으로 표현해 생명의 근원을 이야기한다. 같은 해에 그린 ‘뛰는 동물’부터 35년 후인 최근 완성한 ‘나무가 된 사슴’까지 관통하는 공통분모는 단순함에 내재한 원초적 생명력이다.

오는 11월에는 작가의 작업실이 위치한 독일 미헬슈타트 시립미술관에 노은님의 이름을 따 그의 작품을 전시하는 영구 전시관이 문을 연다. 기념비적인 사건이지만 정작 작가는 자랑거리로 내세우지 않는다.

“살아남기 위해/ 들에 나가 싸우는 병정처럼/ 싸울 필요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서는/ 풀밭의 아이처럼/ 놀아야 한다.” 노 작가는 화려한 미사여구, 현학적 표현 하나 없이 자신의 예술세계를 이야기한다. 유럽에서도 공인받은 거장이 됐건만 그는 여전히 겸손하다. 한국 내 숙소인 서울여대 교수 사택에 딸린 한 평 남짓한 창고를 청소하고선 그 좁은 방에서도 그림을 그린다. 어떤 꿈을 꾸는지가 중요할 뿐, 몸담은 방의 크기는 중요치 않다는 듯. 전시는 8월 18일까지.
/조상인기자 ccsi@sedaily.com·사진제공=가나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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