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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수칼럼] '핀란드화'의 교훈

사드간섭·방공식별구역 침범 등
패권 추구하는 中압력 커지는데
정부는 할말 못하고 저자세 일관
러시아 눈치보기 급급한 핀란드가
왜 美안보우산 빌리는지 주목해야

[오철수칼럼] '핀란드화'의 교훈
오철수 논설실장

오랫동안 스웨덴과 제정러시아의 식민지배를 받았던 핀란드는 1917년 꿈에 그리던 독립을 이뤘다. 그러나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면서 또다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한 지 3개월 뒤인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느닷없이 핀란드를 공격했다. 인구 370만명에 불과했던 핀란드가 막강한 군사력을 가진 소련의 공격을 막아내기는 어려웠다. 더군다나 5년 가까이 전쟁을 치르는 동안 동맹국의 지원도 받지 못했다. 핀란드는 할 수 없이 국토의 10% 이상을 소련에 넘겨주고 평화조약을 체결해야만 했다. 그게 다가 아니었다. 이후 핀란드는 소련의 눈치를 보느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도 가입하지 못하고 군사 중립국으로 남았다. 심지어 소련의 심기를 건드릴 만한 뉴스를 자체 검열하기까지 했다. 핀란드는 소련이 붕괴된 이후에도 러시아와 우호관계 유지를 최우선 정책으로 삼았다. 국제정치학계에서는 이처럼 약소국이 강대국의 눈치를 보면서 국익을 양보하는 현상을 다소 경멸적인 의미를 담아 ‘핀란드화(finlandization)’라고 불렀다.

러시아 눈치 살피기에 급급했던 핀란드가 최근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계기는 러시아의 군사 위협이다. 러시아가 2014년 크림반도를 병합하는 등 군사 압박을 강화하자 미국과의 협력 외에는 대안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핀란드는 미국과 안보협정을 맺고 자국 내에서 나토군의 군사훈련도 허용하고 있다. 핀란드의 사례는 특정 지역에서 패권을 추구하는 세력이 등장할 경우 주변 안보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는지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동북아시아도 최근 안보 지형이 급변하고 있다. 가장 큰 변수는 중국이다. 시진핑 정부가 들어선 뒤 중국은 2차 대전 이후 세계 질서를 주도해온 미국에 도전장을 던지고 나섰다. 시진핑은 덩샤오핑 이후 견지해온 신중한 외교 노선인 ‘도광양회(韜光養晦)’를 버리고 공세적 카드를 꺼내 들었다. 중국은 경제성장을 바탕으로 군사력 강화에 나서면서 미국과 맞부딪치고 있다.

동북아 안보지형 변화의 영향을 가장 크게 받는 곳은 한국이다. 중국은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에 맞서 ‘일대일로(一帶一路)’에 참여하라고 압박하는 데서 더 나아가 한국 내정에도 사사건건 간섭하고 있다. 중국은 북한의 미사일로부터 우리의 생존을 지키는 데 필수적인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에도 시비를 걸고 있다. 이뿐만이 아니다. 중국 전투기들은 동해의 한국 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에 제집 드나들 듯이 들락거리고 있다. 과거 핀란드가 러시아에 그랬던 것보다 더 심한 눈치 보기를 한국에 강요하는 모습이다.

안보 환경이 급변하는 상황에서는 대응이 중요하다. 하지만 최근 우리 정부의 움직임을 보노라면 심히 걱정스럽다. 너무 저자세로 일관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사드가 안보에 꼭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2년이 넘도록 정식 배치를 미루고 있다. 중국은 이마저도 철수하라는 억지를 부리고 있지만 우리 정부는 제대로 항의도 못 하고 있다. 오히려 △사드의 추가배치 △미국의 탄도미사일방어체제 참여 △한미일 안보협력을 하지 않겠다는 ‘3불(不)’ 악속까지 덜컥 해버렸다. 사드가 이 모양이니 미국이 최근 아시아에 배치하려는 중거리핵전력(INF)은 더 말할 나위도 없다. 이러니 미국과의 동맹이 잘 굴러갈 리 없다. 가뜩이나 방위비 분담금을 둘러싸고 이견이 큰 상황에서 주한미군을 지킬 사드마저 제대로 배치할 수 없다면 미국이 한국에서 발을 뺀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중국이 동북아 패권을 노리는 상황에서 미국과의 동맹이 깨지면 무엇으로 우리의 안보를 지키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이쯤 해서 핀란드가 왜 미국의 안보 우산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지를 주목해 봐야 한다. 특히 동아시아는 중국과 주변국의 국력 차이가 커서 유럽처럼 내부세력 간 균형을 이루기가 어렵다. 역외세력인 미국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미국과 동맹이 느슨해지면 안보는 위태로워진다. 정부는 중국에 저자세를 보이면 보일수록 중국의 속국화 위험만 커질 뿐이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cs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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