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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경제소사] 1721년 뉘스타드 조약

러시아와 스웨덴의 명암

[오늘의 경제소사] 1721년 뉘스타드 조약
뉘스타드 조약 체결 모습을 담은 그림. /위키피디아

1721년 8월29일 스웨덴 남부 뉘스타드(Nystad·오늘날 핀란드 우시카우풍키). 러시아 차르국과 스웨덴 제국이 평화조약을 맺었다. 뉘스타드 조약으로 1700년부터 21년 동안 이어진 대북방전쟁(Great Northern War)도 비로소 끝났다. 불과 150만명의 인구로 독일 북부와 발트 지역, 핀란드를 지배하며 ‘북방의 사자’로 군림하던 스웨덴 제국 역시 막을 내렸다. 대신 러시아가 열강으로 떠올랐다. 대북방전쟁에서는 여러 나라가 뒤엉켰다. 러시아와 덴마크, 폴란드·리투아니아 연방이 반스웨덴 동맹으로 뭉쳤다. 오스만튀르크는 스웨덴을 간접 지원하고 영국은 필요에 따라 지원 대상을 바꿨다.

대북방전쟁은 두 명의 영웅을 낳았다. 러시아 표트르 1세와 스웨덴 칼 12세. 둘 다 젊었다. 전쟁을 시작할 때 28세인 표트르 1세가 18세인 칼 12세보다 절박한 처지였다. 남으로는 오스만튀르크에, 북으로는 스웨덴에 막혀 바다로 진출할 수 없었던 표트르 1세는 차례차례 장벽을 넘었다. 18세에 포병으로 직접 참전한 오스만과의 싸움에서 이기고서야 3년에 걸친 서유럽 유학길에 올랐다. 대규모 수행단을 대동한 그는 신분을 위장한 채 조선술과 대포제작술을 익히고 돌아와 군대를 신식으로 뜯어고쳤다.

1700년 동맹국인 폴란드와 덴마크가 스웨덴을 공격할 때도 그는 기다렸다. 오스만과 30년 불가침조약을 맺고서야 전쟁에 끼어들었다. 동맹군이 어리다고 만만하게 봤던 칼 12세는 병사들의 선두에서 싸우며 전투마다 승리를 이끌었다. 특히 4배 이상의 러시아군을 전멸시키며 막대한 전쟁물자까지 확보한 나르바 전투로 명성을 떨쳤다. 연전연승하던 칼 12세가 러시아로 바로 진격하거나 폴란드 왕위까지 받아들였다면 진작에 끝났을 전쟁은 러시아가 특유의 청야(淸野) 작전을 쓰면서 늘어졌다. 결국 스웨덴군은 러시아의 늪에 빠지고 1709년부터는 전세가 뒤집혔다.

칼 12세는 오스만에 몸을 의탁했다가 어렵사리 귀국, 역전을 노렸으나 1718년 덴마크 저격병의 총에 맞아 죽었다. 스웨덴은 프로이센과 하노버·덴마크 등에 영토를 조금씩 내줬다. 전쟁 중에 건설한 페테르부르크에서 발진한 러시아 신형 군함들이 본국 곳곳을 약탈하자 더 버티지 못하고 뉘스타드 조약을 맺었다. 승패를 가른 것은 무엇일까. 인구 차이와 흑사병 탓도 있지만 최고의 야전지휘관인 칼 12세에게는 없던 군주로서의 능력을 표트르 1세는 갖고 있었다. 포기를 모르며 반드시 반대파를 눌러 국론을 하나로 만들고 난 다음에야 전쟁을 벌였고 끝내 이겼다.
/권홍우선임기자 hong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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