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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격호 별세]'껌' 하나로 재계 5위 롯데그룹 만든 문학청년

신용중시 경영철학과 마케팅 능력으로 일본에서 성공
1967년 한국에서 유통, 관광, 화학사업까지 진출하며 롯데 신화 써내려가
말년 '왕자의 난' 등 고초

[신격호 별세]'껌' 하나로 재계 5위 롯데그룹 만든 문학청년
신격호 명예회장의 젊은 시절. /사진제공=롯데

롯데그룹 창업주이자 19일 별세한 신격호 명예회장의 삶에는 한국 유통·관광·화학 기업의 성장사가 그대로 응축돼 있다. 일각에서는 일제강점기를 비롯한 한국 근현대사의 질곡과 고도성장 과정을 엿볼 수 있다는 평가를 내놓는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에서 기업가로 성공한 이후 1967년부터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사업을 시작해 자산 기준 국내 재계 5위의 롯데그룹을 키워냈다. 탁월한 경영수완과 뚝심있는 추진력으로 ‘껌 하나로 수백조의 자산을 만들어 낸 인물’로도 평가 받는다. 말년에는 맏아들인 신동주 씨와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롯데 경영권을 둘러싼 이른바 ‘왕자의 난’으로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 및 순환출자구조가 세상에 알려지며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적수공권으로 일으킨 롯데=신 명예회장은 1921년 10월 경남 울산 삼남면 둔기리에서 5남5녀의 맏이로 태어났다. 신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의 수탈이 가장 극심했던 1942년 성공을 위해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과 우유배달 등으로 고학생활을 시작한다. 한 때 기자나 시인을 꿈꿨던 신 명예회장은 고학생활 시 성실성을 높게 산 일본인으로부터 사업을 위한 자금 지원을 받게 되고 그 후 사업에 본격 뛰어든다. 신 회장은 미국의 일본 열도 공습 등으로 공장이 전소되는 등의 어려움 속에서도 특유의 ‘신용중시’ 철학으로 롯데그룹 신화를 써내려가게 된다.

일본인 하나미쓰가 당시 5만 엔을 신 명예회장 측에 내주며 사업을 지원했으며 신 명예회장의 공장이 폭격으로 전소된 이후에도 그의 가능성을 믿고 다시한번 자금을 지원한 에피소드는 유명하다. 신 명예회장은 이후 재기에 성공해 일 년 반 만에 빌린 돈을 모두 갚고 고마움의 표시로 하나미쓰에게 따로 집을 한 채 사 주며 믿음에 보답한다.

신 명예회장의 신화는 ‘껌’에서 시작된다. 신 명예회장은 일본 와세다 대학에서 화공과를 전공한 만큼 껌과 같은 다양한 향신료 등이 들어간 껌 제조에서도 능력을 발휘한다. 마케팅 부문에서도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껌 포장지 안에 1,000만엔 교환권을 넣었다고 대대적으로 홍보한 이후 엄청난 량의 껌을 팔아 막대한 수익을 거둔다. 이후 괴테의 소설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심취해 있던 신 명예회장은 소설의 여주인공 이름에서 회사 이름인 ‘롯데’를 따 오며 롯데그룹의 탄생을 알린다. 1961년에는 유럽 기술자들을 초빙해 일본내에서도 제조가 힘들다고 평가받던 초콜릿 시장에 뛰어들어 일본 내에서 확실히 자리잡는다.

[신격호 별세]'껌' 하나로 재계 5위 롯데그룹 만든 문학청년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1991년 롯데백화점 영등포점 개점 기념식에 참석하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25년만의 ‘금의환향’=신 명예회장은 1967년 당시 투자 유치에 적극적이던 박정희 정권 기조에 호응하는 한편 한일 국교 정상화에 따른 수익 창출 기대로 한국롯데제과를 설립한다. 당시 신 회장은 “조국을 장시일 떠나 있었던 관계로 서투른 점도 허다할 줄 생각되지만 소생은 성심성의, 가진 역량을 경주하겠”며 남다른 소회를 밝히기도 한다.

롯데그룹은 1970년대에 롯데칠성음료와 롯데삼강(현 롯데푸드) 등을 설립했으며 이후에도 롯데호텔과 롯데쇼핑 등으로 유통과 관광 산업으로까지 영역을 확장해 국내 대기업 중 확실한 입지를 구축하게 된다. 또 호남석유화학(현 롯데케미칼)과 롯데건설 등으로 영역을 확장해 현재 롯데 그룹의 ‘캐시카우’인 화학 부문 육성과 한국을 상징하는 ‘롯데타워’ 건설로까지 이어지게 된다.

[신격호 별세]'껌' 하나로 재계 5위 롯데그룹 만든 문학청년
신격호 명예회장이 지난 2011년 잠실 제2롯데월드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제공=롯데

◇왕자의 난으로 고초=신 명예회장은 이후에도 일본과 한국을 오가는 이른바 ‘현해탄 경영’을 통해 롯데 그룹의 위상을 높여갔지만 2015년 터진 ‘왕자의 난’으로 언론과 정치권의 뭇매를 맞게 된다. 당시 롯데그룹의 복잡한 지배구조까지 낱낱이 밝혀지면서 롯데 그룹은 물론 재계에도 ‘메가톤급’ 충격을 안겨다 줬다. 재계에서는 ‘신격호 시대’의 종언을 알리는 사건으로 분석하기도 한다.

왕자의 난으로 신 명예회장의 애초 구상인 장남 신동주 씨가 일본 롯데를, 차남 신동빈 회장이 한국 롯데를 각각 맡는 방안은 어그러졌다. 계속되는 언론 플레이와 날선 법정 다툼 속에서 결국 신동빈 회장의 경영능력을 높게 평가한 일본롯데주주들이 신 회장 측의 손을 들어주고 신 회장이 일본·한국 롯데를 모두 총괄하는 형태로 바뀌게 된다. 롯데그룹은 향후 호텔 롯데 상장을 통해 일본 롯데와 롯데지주(004990)를 중심으로 짜여져 있는 롯데그룹사 지분 문제도 해결한다는 계획이다. 신 명예회장은 왕자의 난 당시 치매약(아리셉트) 복용사실이 알려지기도 했다. /양철민기자 chop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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