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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비극은 어디서 오는가

송영규 여론독자부장
단기 효과 위해 재앙적 결정내린
이스턴섬·中 전철 밟지 않으려면
저성장·저출산 등 잇단 사회 충격
혁신·화합 통해 돌파구 찾아내야

[여명] 비극은 어디서 오는가

남태평양의 천애고도 이스터섬. 가장 가까이 위치한 섬도 2,000㎞나 떨어진 외딴섬이다. 한때는 인구가 1만명을 넘고 세계에서 가장 큰 야자나무들로 뒤덮인 섬이었으나 지금은 사람도 나무도 없이 황량하기 그지없는 허허벌판에 거대한 ‘모아이’ 석상들만 존재할 뿐이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분명하지는 않지만 섬 주민들이 나무를 무분별하게 베어내 카누와 땔감으로 사용하면서 수종이 멸종하고 결국 식인 풍습으로 연결돼 섬 주민 대다수가 죽었다는 게 유력한 가설이다.

지난 1958년 중국 전역에 당의 명령이 내려왔다. 식량 증산을 위해 꼭 필요한 조치라고 했다. 내용은 쥐와 참새, 파리의 박멸. 불과 이틀 동안 파리 4만8,695.49㎏, 쥐 93만486마리, 참새 136만7,440마리가 사라졌다. 숲과 나무를 샅샅이 뒤져 꼭꼭 숨어 있는 참새 알까지 찾아내 없앴다. 대풍이 들었을까. 천적이 사라지자 그 자리를 메뚜기 등이 꿰찼다. 그로부터 3년. 중국은 사상 최악의 대기근을 겪어야 했다. 무려 3,000만명이 먹을 것이 없어 굶어 죽었다.

두 곳의 비극에는 공통점이 있다.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했고 그에 대해 재앙적 결정이 이뤄졌다는 점이다. 이스터섬 주민들은 먹을 것이 사라지고 이웃들이 죽어 나가는 것을 지켜보면서도 파괴적 행위를 멈추지 않았다. 당장의 이익에 눈이 먼 결정은 결국 삶의 터전을 파괴하고 말았다. 정책결정권자의 즉흥적 결정은 중국 대기근의 일부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부 중국 공산당원과 과학자들의 반대가 있었지만 참새와 쥐들이 없어지면 인민들이 잘 먹고 잘살 수 있으리라는 지도자의 잘못된 확신은 독이 돼 돌아왔다.

이스터섬과 중국의 비극이 먼 옛날 멀리 떨어진 지역의 얘기만으로 들리지 않는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는 전에 경험해보지 못한 변화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있다. 인공지능(AI)과 빅데이터·자율주행차 등으로 대변되는 4차 산업혁명은 기술의 노동 대체 가능성을 키우며 노동시장의 근본 질서를 바꿔놓았고 공유경제는 자본주의의 기본인 소유 개념을 흔들고 있다. 급속한 고령화와 2%도 위태로운 저성장 시대로의 돌입은 일자리를 둘러싼 세대 간 갈등을 심화시키고 저출산은 단순한 생산인구의 감소를 넘어 국가 소멸에 대한 우려로까지 연결된다. 하나같이 사회의 존재 기반을 뒤흔들 수 있는 내부 충격들이다.

우리 사회가 경험하고 있는 변화가 비극으로 이어지지 않으려면 재앙적 결정을 피해야 한다. 과연 그렇게 하고 있나. 모빌리티 혁신을 하랬더니 ‘타다’를 못 타게 하고 공유경제 활성화 요구에는 규제의 쇠고랑을 채웠다. 집값을 잡으라는 아우성은 중산층을 잡는 정책으로 대응하고 일자리 증가는 현대판 취로사업으로 대체된다.

견제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야당은 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만 할 뿐 대안을 내놓지 못한다. 지지율이 오를 리 없다. 당정청은 대통령의 말 한마디를 지키기 위해 안달한다. ‘노맨(No man)’은 사라지고 ‘예스맨’만 판치는 세상이다. 제대로 된 정책 판단이 이뤄질 리 없다.

‘총, 균, 쇠’로 유명한 재러드 다이아몬드는 또 다른 저서에서 한 사회가 재앙적 결정을 내리는 이유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문제가 실제로 발생하기 전에 그 문제를 예측하는 데 실패하는 것, 문제가 닥쳤는데도 사회가 그것을 인지하지 못할 경우, 사회가 문제를 인지했더라도 해결하려는 시도에 실패했을 때, 마지막으로 문제 해결을 시도했지만 성공하지 못하는 것이다. 우리는 어쩌면 이 중 어디쯤 위치하고 있을지 모른다.

몰아치는 변화는 우리 사회에 혁신과 화합으로 돌파구를 찾을지, 갈등과 독선으로 벼랑 끝에 설지 선택을 강요하고 있다. 이념이나 정치적 계산 따위가 한가하게 끼어들 틈이 없다. 위기를 내일을 위한 ‘좋은 위기’로 만드는 것은 다 함께 머리를 맞대지 않고는 불가능하다. 이것이 우리 사회가 비극으로 가지 않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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