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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고전통해 세상보기] 이의위리(以義爲利)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나라 살림은 이익 아닌 도의가 공익

공직자가 '찬스' 사용해 자녀 도우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 기회 뺏는 꼴

공정이 무너지면 도전·활력도 줄어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중국에서 생활하거나 사업을 하다 보면 관시(關係) 사회라는 말을 많이 듣는다. 관시가 있으면 안 되는 일도 되게 할 수 있다고 한다. 예컨대 명절 연휴에 기차와 비행기 표를 미리 구하지 못하더라도 관시를 이용하면 쉽게 구할 수 있고 관공서를 출입하며 지지부진하던 일 처리도 관시를 통하면 빨리 해결할 수 있다. 특히 현지 사정을 모르는 외국인이라면 느리게 진행되는 통상 절차보다 관시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러한 관시는 무소불위로 작용하면 부정부패의 온상이 되기도 한다.

우리나라는 관계 사회일까 아닐까. 언뜻 우리나라는 제도와 시스템이 갖춰져 있고 언론과 시민사회의 감시가 작용해 관계가 크게 작용하지 않을 듯하다. 최근 불거지고 있는 온갖 ‘찬스’ 담론을 보면 우리나라도 관계 사회의 특성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 범죄 여부를 떠나서 부모의 안면을 활용해 새로운 기회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아버지 찬스고 어머니 찬스다. 사실 부모 찬스는 이미 항간에 널리 퍼진 조부모 찬스의 확대판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입시가 개인 능력과 학력이 아니라 조부모를 포함한 집안의 경제력과 인력을 총동원하는 게임으로 변질한 지 오래다. 개인의 노력과 학력을 무시할 수 없지만 혼자 공부하는 학생이 재력을 바탕으로 유명 학원에 다니고 족집게 과외를 받아 실력을 보충하는 학생보다 좋은 점수를 받기란 쉽지 않다. 오죽하면 개천에서 더 이상 용이 나오지 않는다는 자조 섞인 말이 나올까.



청탁금지법 제정으로 공직자를 대상으로 하는 부정 청탁이 더 이상 가능하지 않게 됐고 또 공직자가 민간 부분에 부정 청탁을 금지하는 이해충돌방지법 제정이 논의되고 있다. 사실 이해충돌방지법의 제정은 늦은 감이 있다. 공직자가 전화나 문자 한 통으로 없던 기회와 자리를 만들기도 하고 직무상으로 취득한 정보를 활용해 가족·친지가 돈을 벌게 할 수 있다. 공직자의 직무 수행을 과도하게 의심하는 것이 아니라 개연성이 워낙 크기 때문이다. 이는 은행 직원이 돈에 대한 유혹에 노출돼 있다고 보는 합리적 의심과 맥을 같이한다고 할 수 있다.

‘대학’에 보면 이해충돌에 너무나도 예민했던 맹헌자(孟獻子)의 이야기가 나온다. “사에서 대부로 승진해 말을 키우면 집에 닭과 돼지를 키우지 말고 경대부가 돼 집의 제사와 상사에 얼음을 쓰는 집안이라면 소와 양을 키우지 말고 수레를 백 대를 보유하고 있다면 각종 명목으로 세금을 마구잡이로 거둬들이는 관료를 둬서 안 된다. 수레 백 대를 보유할 경우에 세금을 마구잡이로 거둬들이는 관료보다 차라리 직무에서 예산을 횡령하는 관료를 내버려 둬라.”



앞부분은 이해하기가 쉽다. 마지막 부분은 다소 의아하게 여겨진다. 횡령도 나쁜 짓이고 과도한 세금 징수도 나쁜 짓이기 때문이다. 후자는 이미 거둔 세금에서 일부를 훔치는 일에 지나지 않지만 전자는 세금을 거둬들이고 또 세금을 거둬 백성에게 가중의 고통과 피해를 안겨주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세금을 훔치는 도신(盜臣)을 용인하는 듯하고 세금을 마구잡이로 거두는 취렴지신(聚斂之臣)을 신랄하게 비판하고 있을까. 이에 대해 ‘대학’에서는 “나라 살림은 이익(사익)을 이익(공익)으로 여기지 않고 도의를 공익으로 여긴다(국불이리위리·國不以利爲利, 이의위리야·以義爲利也)”고 매듭짓고 있다.

오늘날 버전으로 말하면 맹헌자는 공직자가 각종 찬스를 이용하지 말라는 이해충돌방지법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우리 사회 곳곳에 맹헌자가 있기 때문에 투명성과 공정성이 살아 있는 편이다. 공직자만이 아니라 누구라도 자신의 평소 관계로 자녀를 쉽게 입학·취직시키는 등 기회를 얻게 한다면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의 기회를 빼앗을 뿐만 아니라 피땀 흘린 노력의 보답을 기대하지 못하게 한다. 이는 이 시대의 화두인 공정을 저버리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공정이 무너지면 자연히 도전과 활력도 줄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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