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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인물·화제
위대한 한 명이 바꾼 11명의 스포츠...마라도나는 '혁명'이었다

['축구의 신' 뇌 수술 후 회복중 심장마비로 타계]

펠레·호날두·메시에 득점 뒤지지만

최초 기록 쏟아내며 독보적 영향력

1986년 60m 드리블 '세기의 골'

월드컵 우승 견인, 아르헨 영웅 등극

마라도나 막으려 '압박 수비' 생겨나

대통령궁 안치...3일간 국가 애도 기간

펠레 "천국에서 같이 공 차는 날 올 것"

호날두 "영원한 천재...그의 유산 영원"

메시 "그는 떠났지만 영원히 존재할 것"

아르헨티나 대표팀의 디에고 마라도나가 1986 멕시코 월드컵 우승 뒤 머리 위로 트로피를 들어 올리고 있다. /AP연합뉴스




지금 세대의 축구 팬들이 리오넬 메시(아르헨티나)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포르투갈)의 시대를 살고 있다면 이전 세대에게 ‘축구 아이콘’은 단연 디에고 마라도나(아르헨티나)였다.

‘축구의 신’ ‘아르헨티나 국민 영웅’ ‘역사상 최고의 공격형 미드필더’로 칭송받으며 한 시대를 풍미했던 마라도나가 우리 곁을 떠났다.

아르헨티나 언론과 로이터·AFP통신 등은 25일(현지 시간) 마라도나가 심장마비로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 근교 티그레의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고 전했다. 향년 60세. 마라도나는 지난 3일 경막 아래 피가 고이는 경막하혈종으로 뇌 수술을 받고 11일 퇴원해 회복 중이었다. 지난해부터 아르헨티나 힘나시아 라플라타의 감독으로 일해온 그는 60세 생일이던 지난달 30일 경기를 앞두고 생일 축하를 받은 게 대중에게 전해진 마지막 모습이 됐다.

1997년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마라도나의 이름은 역대 최고 축구 선수를 뽑을 때마다 언급됐다. 특히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스포츠계가 마비됐던 시기에 펠레(브라질)·메시와 함께 끊임없이 회자했다.

1986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에서 아르헨티나 디에고 마라도나의 결승골 장면. ‘20세기 최고의 골’로 평가받는다. /AFP연합뉴스




마라도나가 1976년부터 20여 년간 남긴 기록은 681경기 345골(A매치 91경기 34골 포함). 훌륭한 성적표지만 공식 경기 역대 최다 골 부문에서 톱 10에도 들지 못한다. 이 부문 1위는 767골의 펠레다. 그 뒤로 749골의 호날두가 2위, 메시는 711골로 5위다. 축구 역사에 손꼽힐 만큼 많은 득점을 한 골잡이가 아닌데도 마라도나가 전설로 통하는 것은 그가 축구계에 선사한 충격과 경이·영향력이 그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마라도나 하면 역시 드리블이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드리블러’라는 수식어를 가장 잘 보여준 장면은 1986년 멕시코 월드컵 8강 잉글랜드전이다. 이 경기에서 마라도나는 하프라인 뒤에서부터 수비진과 골키퍼까지 6명을 차례로 제치는 60m 단독 드리블로 ‘세기의 골’을 만들어냈다. 혼자 2골을 넣어 2 대 1 승리를 이끈 마라도나는 일약 아르헨티나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승리는 단순한 축구 경기의 승리가 아니었다. 1982년 영국과의 포클랜드 전쟁 패배로 상처 입은 조국에 마라도나는 축구로 자긍심을 심어준 셈이었다. 아르헨티나는 결승에서 서독을 3대 2로 누르고 역대 두 번째 우승을 달성했고 마라도나는 7경기 5골 5도움으로 대회 최우수선수(골든볼)로 뽑혔다. 네 차례 월드컵에서 올린 득점만 8골이다. 마라도나의 시신은 아르헨티나 대통령궁에 안치돼 사흘간 추모객을 받는다. 대통령실은 이 사흘을 국가 애도 기간으로 선포했다.



25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나폴리의 산파올로 스타디움 앞에 시민들이 모여들어 디에고 마라도나를 추모하고 있다. /나폴리=EPA연합뉴스


지금은 흔한 ‘압박 축구’라는 말도 마라도나 때문에 생겨났다. ‘현대 축구 전술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리고 사키(이탈리아) 감독은 이탈리아 세리에A의 AC밀란을 지휘하던 시절 나폴리의 마라도나를 막기 위해 압박 축구를 고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아르헨티나 외에 마라도나의 죽음을 가장 슬퍼한 지역은 아마 나폴리일 것이다. 1984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를 떠나 당대 최고 리그라는 세리에A로 무대를 옮긴 마라도나는 만년 약체였던 나폴리에 리그 우승 2회와 유럽축구연맹(UEFA)컵 제패의 황금기를 안겼다. 축구는 11명이 역할을 분담하는 팀 스포츠지만 위대한 한 명이 팀의 운명을 바꿀 수도 있다는 혁명적인 사실을 홀로 증명해냈다. 이날 나폴리 중심가에는 촛불을 든 시민들이 모여들어 명예시민 마라도나를 추모했다.

2010 남아공 월드컵 조별 리그 한국전에서 4 대 1로 이긴 뒤 리오넬 메시(왼쪽)를 칭찬하는 디에고 마라도나 아르헨티나 대표팀 감독. /AP연합뉴스


마라도나는 ‘악동’ 수식어로도 유명했다. 멕시코 월드컵 잉글랜드전에서 머리 대신 팔로 선제골을 넣었지만 득점이 인정된 ‘신의 손’ 논란, 1991년의 코카인 양성 반응, 1994년 미국 월드컵 때의 금지 약물 복용 등으로 오명을 썼다. 화려한 여성 편력에 여러 여성 사이에서 최소 8명의 자녀를 얻은 가운데 이른 죽음으로 유산 상속 문제가 복잡하게 전개될 것이라는 전망도 있다.

여든 살의 ‘축구 황제’ 펠레는 “천국에서 같이 공을 차는 날이 올 것”이라고 했고 호날두는 “영원한 천재가 너무 빨리 우리 곁을 떠났다. 하지만 그가 남긴 유산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라는 글을 남겼다. 대표팀에서 감독 마라도나와 함께하기도 했던 메시는 “모든 국민과 축구계에 슬픈 날이다. 그는 떠났지만 동시에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추모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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