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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 '쥐'가 떠난 자리에 '소'를 맞으며

'흰 소 해'엔 소중한 일상 회복되고

우직한 소시민·전문가 가치 존중을

성실·연대·희생이라는 '소'의 가치

정치권, 국민들에게만 요구할텐가

최형욱 온라인담당 부국장





‘4월 16일 아침. 의사 베르나르 리유는 자기의 진찰실을 나서다가 층계참 한복판에서 죽어 있는 쥐 한 마리를 목격했다.’(민음사·김화영 옮김)

알베르 카뮈의 고전 소설 ‘페스트’는 일종의 서문이 끝나면 ‘쥐(子)’를 통해 재앙의 시작을 예고한다. 우리 민간설화에서도 쥐는 홍수 같은 자연재해가 생기면 떼로 출몰하는 탓에 예지와 지혜의 동물로 알려져 있다. 또 특유의 번식력 때문에 다산과 풍요를 상징한다. 쥐는 십이지(十二支) 중에서 첫 번째지만 인기 캐릭터는 아니다. 무엇보다 쥐는 양식을 훔쳐먹고 병균을 옮긴다. 국토지리정보원에 따르면 전국 고시 지명 가운데 쥐에서 유래한 곳은 2020년 기준 64개에 불과하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 19)이 강타한 2020년 경자년(庚子年)은 쥐의 불길한 이미지가 재현된 해였다. 훗날 기억하기 싫은, 혹은 잃어버린 한 해로 남을 것 같다. 자녀의 초등학교 입학식 때 부모들은 애틋함이나 대견함보다는 감염 공포에 사로잡혔다. 오랜 친구들과의 연말 생사 확인 모임도 다음으로 미뤄야 했다.

정부의 정책 실패까지 겹치면서 학교생활, 취업과 창업, 전셋집이나 내 집 마련, 안전과 자유라는 일상적인 삶이 소시민들에게 더 가혹하게 무너지고 있다. 일상(日常)이 얼마나 소중한지 뼈저리게 깨달았다는 게 교훈 아닌 교훈이랄까. 혁명가를 꿈꿨던 지난 1980년대 민주화 운동권이 그토록 경멸했던 소시민의 행복이란 실상 사회를 지탱하는 근본적인 가치였다.

코로나19는 역사 속 다른 재해가 그러했듯 우리 사회의 치부도 드러냈다. ‘페스트’에도 나오는 것처럼 대중의 공포를 악용해 사적 이익을 쌓으려는 사람들로 넘쳐난다. 반면 일반 시민들은 선진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개인 기본권 침해마저 감내해야 한다. 또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의료진과 같은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무시되고 표현의 자유나 삼권분립 같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무너지는 중이다.



“국민이 뽑은 대통령을 지키는 것이 바로 민주주의를 지키는 것”이라는 김두관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전근대적인 발언을 듣노라면 30여 년간 쌓아왔다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얼마나 연약한지 절감하게 된다. 이 와중에 선택적 정의, 권위주의와 정치 팬덤, 승자 독식, 국민 편 가르기와 증오 등이 페스트처럼 퍼지면서 재난 극복의 최후 보루인 공동체 정신마저 병들고 있다.

이제 신축년(辛丑年) 소의 해를 맞았다. 천간 ‘신’과 지지 ‘축’이 만나 ‘흰 소의 해’다. 흰 소는 신성하고 지혜로운 기운을 띤다고 하니 새해에는 코로나19가 물러가며 시민들의 일상도 회복되기를 기대해본다.

‘흰 소’가 아니더라도 소는 풍요와 부의 상징이다. 의로움과 헌신, 희생과 수호를 뜻하기도 한다. 과거 지배 계층에 수탈당하던 민중은 온몸을 다 바쳐 우직하게 일만 하다가도 때로 맹수로부터 지켜주는 소에게 의지했다. 이를 반영하듯 소와 관련된 고시 지명은 총 731개에 이른다. 용(1,261개)·말(744개)에 이어 세 번째다.

모쪼록 새해는 쥐처럼 약삭빠르지 않더라도 소처럼 성실한 소시민이, 정치권에 아부하지 않아도 자기 분야를 고집스럽게 매진해온 전문가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 더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해 9월 소설 ‘페스트’에 나온 ‘페스트와 싸우는 유일한 방법은 성실성’이라는 글귀를 인용해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극찬하며 “성실과 헌신이야말로 우리가 전할 가치”라고 말했다.

국민들에 대해서도 “스스로 방역의 주체가 돼 연대와 협력의 힘을 발휘했다”고 강조했다. 새해에는 집권 세력도 공동체 정신의 모범이 되기를 바란다. 자신들은 학맥·인맥으로 얽혀 기득권을 주고받고 권력투쟁에 열을 올리면서 언제까지 국민에게만 소와 같은 성실과 희생, 연대와 책임을 요구할 텐가. choihu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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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 # 새해, # 경자년, # 신축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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