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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국민 생명보다 중대한 '北과의 평화' 국익이 뭔가요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北피살 공무원' 정보공개 요구 7달만에 첫 재판

靑 "北첩보는 평화 증진과 통일정책 국익 직결"

"중대 이익 해친다" 주장에 유족 "정부가 거짓말"

11개월째 시신도 못찾아 '사망자' 아닌 '실종자'

文은 홍범도 유해 앞에 2번 눈물...민족의식 고취

김정은 친서 등 현 정부서 진실규명 의지 보여야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연합뉴스




지난해 9월 서해 상에서 북한군 총격에 사망한 해양수산부 공무원의 유족이 피살 경위를 알려 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정보공개청구 첫 재판이 드디어 열렸다. 유족 측이 행정소송을 제기한지 무려 7개월 만이다. 청와대는 재판에서 정보가 공개될 경우 한반도 평화 증진, 군 경계태세 등 국익을 현저히 침해할 수 있다”며 유족들에게 맞서는 것으로 확인됐다. 자국민이 북한군에 어떻게 죽었는지를 확인할 정보가 한반도 평화증진, 민족동질성 회복 등의 국익을 현저히 해칠 수도 있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정부가 의지를 갖고 진상 규명에 나서지 않으면 진실은 영영 덮일 수 있다는 지적도 많다. 이 사건은 발생한지 11개월이 지났음에도 아직 시신조차 못 찾은 상태다. 피해 공무원 역시 ‘사망자’로도 인정받지 못한 채 ‘실종자’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현 정부가 미적대는 사이 소송이 1심을 넘어 2심, 3심까지 길어질 경우 다음 정부에서도 진상 규명 작업이 흐지부지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이번 사건을 제대로 매듭 짓지 못할 경우 북측이 앞으로 유사 행위를 되풀이할 수 있다는 점도 문제다. 생명을 앗아간 사건에 대해서도 짧은 사과 한 마디면 곧바로 없던 일이 되는, 북한식 인권 의식을 인정하는 사례가 자꾸 누적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대통령은 홍범도 장군 유해 앞에서 눈물을 보이며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고 역설해 새삼 눈길을 끌기도 했다. <관련기사> ▶[단독] "北 공무원 피격 정보공개" 요구에 靑 "한반도 평화 침해"...20일 7개월만 첫 재판



‘북한 공무원 피살’ 사건 7개월만에 첫 재판…"정부가 골든타임 놓쳐"

20일 서울행정법원 행정11부(부장판사 강우찬)는 북한군에 피격돼 숨진 이모씨의 형 이래진씨가 국가안보실장·국방부장관·해양경찰청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청구소송 1회 변론을 진행했다. 올 1월13일 이씨가 관련 소송을 제기한지 7개월 만이다.

이날 법정에 나온 이씨는 관련 첩보를 입수했을 당시 정부가 책임을 다했는지 여부 등을 확인할 수 있도록 정부기관이 정보를 공개해야 한다고 재차 주장했다. 이씨는 “실종 사실이 대통령에게 보고된 뒤 동생이 사망에 이르기까지 정부는 동생을 살릴 수 있는 ‘골든타임’을 놓쳤다”며 “국민의 생명을 보호하고 지켜야 할 정부기관은 거짓말을 했고 사실을 알아야겠다. 살인의 주체와 경위를 알고 싶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동생이 피살당한 직후인 지난해 10월6일 국방부에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 파일과 다른 녹화 파일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해당 정보가 정보공개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군사기밀보호법상 기밀’이라며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같은 달 14일에는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 함께 탄 동료 9명의 진술조서를 보여 달라며 해양경찰청에, 28일에는 사건 당일 받은 보고·지시사항 등을 밝혀 달라며 청와대에 각각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앞서 지난해 9월21일 어업지도활동을 하던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 이씨는 북측 서해 소연평도 인근 해역에서 돌연 실종됐다. 이후 이씨는 다음날 북한군 총격으로 사망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는 같은 달 25일 돌연 “국무위원장 김정은 동지는 가뜩이나 악성 비루스(코로나19) 병마 위협으로 신고하고 있는 남녘 동포들에게 도움은커녕 우리 측 수역에서 뜻밖의 불미스런 일이 발생해 문재인 대통령과 남녘 동포들에게 커다란 실망감 더해준 것에 대해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는 뜻 전하라고 했다”는 내용의 북한 통지문을 공개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 정부·여당 인사들은 이에 남북 관계가 개선될 수 있다며 역으로 기대를 감추지 않았다.

형 이래진씨는 그해 10월6일 국방부에 북한군 대화 감청 녹음 파일과 다른 녹화 파일에 대한 정보공개를 청구했다. 하지만 국방부는 ‘해당 정보가 정보공개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군사기밀보호법상 기밀’이라며 이를 공개하지 않았다. 같은 달 14일에는 어업지도선 무궁화 10호에 함께 탄 동료 9명의 진술조서를 보여 달라며 해양경찰청에, 28일에는 사건 당일 받은 보고와 지시사항 등을 밝혀 달라며 청와대에 가각 정보공개를 청구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재판부는 비밀심리절차(인카메라 절차)를 밟기로 하고 다음 변론기일을 오는 10월15일로 지정했다. 비밀심리는 당사자를 참여시키지 않고 제출된 공개청구 정보를 비공개로 열람·심사할 수 있는 제도다.

북한군에 피살당한 공무원의 형 이래진씨. /서울경제DB


靑 “北첩보는 평화 증진과 통일정책 국익과 직결…중대 이익 해칠 우려”

재판에 임한 청와대와 정부는 유족들의 요구에 거듭 거부 입장을 밝혔다. 재판 직전인 지난 18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정부 측 소송 준비서면에 따르면 청와대는 “국가안보실의 정보는 대통령에게 전달된 구체적인 보고나 대통령의 명령에 따른 지시”라며 “첩보의 입수 경위, 관련 부서의 대응, 우리 군의 군사작전상황, 북한군 동향 등을 두루 포함하고 있어 국가 안전보장과 국방에 관한 사항임이 명백하다. 만약 국가안보실 정보가 공개된다면 유사한 상황에 대한 대응, 기법, 전략이 그대로 노출돼 국가안보와 대공 활동에 큰 지장을 초래할 수 있고 북한에 대한 군 경계 태세에 취약점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반박했다. 청와대 측은 나아가 “정부는 한반도 평화 증진, 민족동질성 회복 등을 책임지는 특수한 상황에 직면해 있다. 대북 첩보와 관련한 정보는 한반도 평화 증진과 평화적 통일정책 수립·수행이라는 국가의 이익과 직결됐다”며 “국가안보실 정보는 국가안전보장·국방·통일·외교관계 등과 관련한 사항으로 공개될 경우 국가의 중대한 이익을 현저히 해칠 우려가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이와 함께 국방부 측은 “대한민국 통신 수집 능력이 노출될 수 있다”며 “주변 해역에서 해군의 작전 의도와 능력이 노출돼 북한이 악용할 수 있다”고 반대 논리를 세웠다. 해경 측은 “해경 수사 결과·의견이 노출되면 수사기관 직무수행에 곤란을 초래한다”며 정보 공개 거부는 합당하고 밝혔다. 20일 재판에서 해경과 국방부 담당자들은 출석했으나 청와대 국가안보실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이래진씨는 서울경제와 전화통화에서 “청와대와 정부가 7개월이나 지나 준비서면을 제출해 유족 측에 시간을 주지 않았다”며 “국가안보실이 민족동질성 회복을 거론했는데 국방부 자료 외에는 기밀이라고 볼 수도 없는 정보들”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또 “정부가 무조건 ‘월북’의 프레임으로 몰아가면서 무성의한 대응을 보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유족 측은 이와 함께 지난 17일 김홍희 해양경찰청장 앞으로 피해자 인권 침해에 대한 사과와 후속 조치 공지를 요구하는 내용증명도 보냈다. 앞서 국가인권위원회는 지난 7월7일 “해경이 연평도 인근 해상에서 실종·사망한 해양수산부 소속 공무원에 대한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고인의 사생활을 상세히 공개하고 정신적 공황 상태라고 표현한 행위는 피해자와 유족의 인격권과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를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해양경찰청장에게 당시 해경 수사정보국장과 형사과장을 경고 조치하고 직무교육 등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라고 권고했다. 유족들은 지난달 8일 홍콩 주재 북한영사관과 몽골 주재 북한대사관에 e메일을 보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해당 서한을 전달해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5일 오후 서울공항에서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실린 차량을 향해 거수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文은 홍범도 장군 앞에 두 번 ‘눈물’…“누구도 넘보지 못할 나라 만들어야”

한편 청와대와 문 대통령은 지난 한 주간 독립운동가인 홍범도 장군 유해 봉환 사실을 국민들에게 대대적으로 알리고 민족 의식과 애국심을 고취시켰다. 이는 북한군의 공무원 피살 사건 재판 소식과 맞물려 묘한 대조를 이뤘다.

문 대통령은 15일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직접 나가 카자흐스탄에서 봉환된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맞이했다. ‘장군의 귀환’이라는 문구가 적힌 마스크 쓴 문 대통령은 운구 차량이 공항을 빠져나가자 직접 거수경례를 했다. 이례적으로 눈물까지 보였다. 문 대통령은 유해 봉환식이 끝난 뒤 홍범도기념사업회 홍보대사로 활동할 예정인 배우 조진웅씨에게 “국민들 중에는 홍범도 장군에 대해 충분히 알지 못하는 분들도 간혹 있으니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던 그분의 생애와 고귀한 뜻을 적극적으로 알리도록 노력해 달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또 17일 홍 장군에게 건국훈장 중 최고등급인 대한민국장을 수여하면서도 “대한민국의 영광”이라고 기뻐했다. 훈장 수여식에는 국빈 자격으로 방한해 문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진 카심-조마르트 토카예프 대통령도 함께했다. 훈장은 홍범도기념사업회 이사장인 우원식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신 받았다.

문 대통령은 18일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홍 장군 유해 안장식에서도 눈물을 보였다. 문 대통령은 추념사에서 “장군의 불굴의 무장투쟁은 강한 국방력의 뿌리가 됐다”며 “선조들의 고난을 뒤돌아보며 보란 듯이 잘사는 나라,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 국제사회에서 존중받는 나라를 반드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조국을 떠나 만주로, 연해주로, 중앙아시아까지 흘러가야 했던 장군을 비롯한 고려인 동포들의 고난의 삶 속에는 근현대사에서 우리 민족이 겪어야 했던 온갖 역경이 고스란히 배어 있다”는 대목을 읊다가 목소리를 떨었다. 감정이 북받쳐 눈시울이 붉어진 것이다. 문 대통령의 다음 발언은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도록 절치부심해야 한다”였다. 문 대통령의 부인 김정숙 여사도 안장식 중간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박수현 청와대 국민소통수석은 18일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이번 홍 장군님의 귀환을 통해 우리 국민은 굉장히 큰 감동과 환영을 느꼈다. 문 대통령이 흘렸던 한 방울의 눈물, 그것은 대통령 개인의 눈물만이 아니라 국민의 감동과 환영의 표현이었다”고 설명했다. 17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는 “(문 대통령이) 최고의 예우를 하겠다는 약속을 국민을 대표해서 지킨 것”이라며 “모든 국민께서 감동의 눈물로 장군을 맞이하지 않았을까”라고 밝혔다.

북한 김정은. /연합뉴스


차기 정부 들어서기 전에는 진실 규명 의지 보여야

북한군의 공무원 피살 사건과 관련한 정보공개 재판이 유족 측의 승리로 끝나더라도 진실이 완전히 밝혀질 가능성은 상당히 낮아 보인다. 가장 중요한 사건 현장이 북측 해역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벌써 1년 가까이 지난 상황에서 시신의 행방도 묘연한 상태다.

사건이 이번 정부 안에서 발생한 만큼 진실 규명도 되도록 현 정부 안에서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인다.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민간인이, 뚜렷한 이유도 없이 북한군의 총격을 받아 사망한 사건이므로 이에 대응한 정권이 우선적으로 책임을 지는 건 당연지사이다. 정부가 주장하는 ‘월북’의 진위 여부는 부차적인 문제다. 김정은이 지난해 사실상 ‘이쯤에서 논란을 끝내자’는 제안을 했다 하더라도 그건 북한의 사정일 뿐이다. 그 제안을 받았다고 북한이 우리에게 다른 도움을 준 일도 없다.

사건의 특성상 북한의 수사 협조도 필수다. 통일부는 남북 통신연락선이 복구된 지난 7월28일 공무원 피격 사건의 진상 규명을 위해 북측과 협의하겠다고 밝혔지만, 이달 10일 북한이 연락선 재차단한 이후엔 말을 아끼고 있다. 해경은 아예 소송 자료에서 “정보가 공개되는 경우 이번 사망 사건은 물론 앞으로 다른 사건을 수사할 때에도 북한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결국 전면에 나서야 할 주체는 청와대다. 남북관계를 이끄는 콘트롤타워로서 정부 선에서 밝힐 수 있는 부분은 최대한 밝히고, 북한의 협조를 적극 요구하는 것이 자국민에 대한 책무다. 도저히 공개 못할 최상급 기밀이라면 유족들에게 사과와 양해의 말을 건네는 게 우선이다. ‘한반도 평화’라는 대의명분도 중요하지만 국민의 생명·안전과 동떨어진 평화 증진에는 공감하지 못하는 국민도 많다.

김정은과 직접 친서를 교환할 수 있는 사람도 이 나라에서는 문 대통령뿐이다. 청와대가 밝혔듯 문 대통령이 김정은과 그간 수 차례 친서를 주고받았다면 그 과정에서 수사 협조를 요청해 볼 기회도 충분히 있었을 것이다. 국회정보위원회 야당 간사인 하태경 국민의힘 의원은 3일 “국가정보원은 통신선이 연결되기 전에 남북 간 통지문이 수 차례 오갔다고 보고했지만 그 내용 중에 공무원 피격 사건이나 연락소 폭파 같은 내용은 없었다”고 전했다.

청와대가 ‘복지부동’ 자세를 유지하다 보니 지금도 대통령 지지자와 아닌 사람들로 여론이 나뉘어 사망 공무원과 유족들을 조롱하는 경우가 온라인 공간 곳곳에서 보인다. 문 대통령이 눈물을 흘리며 외친 ‘누구도 넘보지 못하는 강한 나라’는 홍 장군의 시대에서만 간절한 게 아니라는 말이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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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부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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