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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사외칼럼
[이희옥 칼럼] 아프간에서의 미중 역할 교대와 한국 외교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

국익 위해서 언제든지 정책 변경

국제정치 냉엄한 현실 새삼 확인

모든 문제 동맹 환원이 능사 아냐

對아프간 외교, 실익 최우선 접근을

이희옥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흔히 아프가니스탄을 ‘제국의 무덤’이라고 한다. 그동안 열강이 아프간을 점령하거나 위성국가로 만들어 아시아와 중동을 향한 지정학적 교두보를 만들고자 했으나 모두 실패했기 때문이다. 미국도 국가 이익의 필요에 따라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를 번갈아 활용했다. 그러나 미국은 “스스로 지키려 하지 않는 곳에서 미군을 더 이상 희생시킬 수 없다”며 철군을 선택했다. 탈레반으로부터 아프간 사람들이 겪게 될 인간 안보의 위기는 미국 외교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으며, 미국은 남은 역량을 집중해 중국을 견제하는 ‘잔인한 결정’을 선택했다.

미국이 떠난 아프간에 중국이 들어올 채비를 하고 있다. 중국은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에 대해 “아프간 국민의 선택을 존중한다”고 밝혔고, 주아프간 중국대사관도 잔류시켰다. 이렇게 보면 중국과 탈레반 정권의 정식 외교 관계 수립도 시간 문제다. 중국의 최대 현안은 탈레반과 신장위구르 자치구 분리주의 세력인 동투르키스탄 이슬람운동(ETIM)의 연계를 차단하는 것이다. 중국은 지난달 28일 탈레반의 2인자이자 전략가인 물라 압둘 가니 바라다르를 초청했다. 이 자리에서 왕이 외교부장은 “아프간의 주권 독립과 영토를 존중한다”고 말했고 탈레반도 “현재 중국과의 국경선을 존중하겠다”고 화답했다. 샤힌 탈레반 대변인도 과거 비밀리에 훈련시키고 지원한 “ETIM의 아프간 입국을 허용하지 않을 것”임을 분명하게 밝히는 등 중국과 탈레반의 국경선에 대한 레드라인을 그었다.



사실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탈레반의 최대 관심사는 업적을 통한 정당화에 있다. 가니 대통령 시기의 부패와 무능 그리고 원조에 의존한 정부보다 유능하고 구체적으로 국민에게 획득감을 심어줘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중국을 불러들이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다. 중국도 탈레반과의 관계 정상화는 아프간의 와칸(Wakhan) 회랑을 통해 중동과 지중해로 나아가는 ‘일대일로’를 확대할 수 있는 길이다. 또 세계 최대의 구리 산지이며, 4차 산업혁명의 필수 광물인 리듐·코발트·희토류 매장 지대라는 점에서 지정학적 교두보를 확보하는 등 윈윈 효과도 있다.

이런 점에서 중국은 아프간 재건 사업을 통해 미국 지도력의 공백을 메우고자 할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고속도로와 철도 등 사회 기반 시설 건설을 통해 중동과 지중해로 진출하는 물류 거점을 확보하고, 국가 재건을 위한 다양한 경제적 지원과 동시에 중국산 코로나 백신으로 인도적 의료 원조를 이루고, 중국의 5G 통신망을 제공해 디지털을 통한 통제 기반을 구축할 것이다. 이것으로 중동과 서아시아에서 중국의 영향력을 유지·확대하고자 함은 말할 것도 없다. 하지만 점령할 수 있으나 민심을 얻지 못하면 ‘힘을 통한 평화’가 얼마나 취약한 것인지 아프간 사태를 통해 확인했다. 소프트파워 등 스마트 진출의 경험이 취약한 중국의 공세적 접근이 또 하나의 제국의 무덤이 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다.

이번 아프간 사태를 계기로 영원한 적도 친구도 없으며 국익을 위해서는 언제든지 정책을 바꿀 수 있다는 국제정치의 냉엄한 현실을 새삼 확인했다. 물론 선진국 클럽에 가입한 한국의 위상은 아프간과 비교할 수 없고, 미중 관계에서 한반도의 전략적 가치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러나 우리 외교가 전략적 균형을 잃고 모든 문제를 동맹으로 환원하는 것이 능사인가에 대해서는 토론이 필요하다. 한·탈레반 관계를 미중 관계와 분리하고, 한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에 협력한 난민을 인간 안보와 보편적 인권 차원에서 어떻게 접근할 것인지, 이슬람과 탈레반 혐오를 넘어 한·탈레반 관계를 언제 어떻게 구축하고 아프간 국가 재건사업에는 어떤 방식으로 참여할 것인지를 논의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필요가 있다. 믿고 싶은 것을 믿으면서 경로를 따라가는 외교를 극복하고 보수와 진보의 대화를 통해 우리 국익의 소재를 확인하는 실험을 대탈레반 외교에서 시도해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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