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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정치일반
'집통령' 꿈꾼 노태우···분당·일산 만들고 주택 200만호 공급

[노태우 별세]

'집 대통령' 표방하며 주택공급 정책 밀어부쳐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1기 신도시도 개발

무리한 건설 속도전으로 불량레미콘 등 부실공사 논란 이어져

고(故)노태우 전 대통령이 1992년 7월2일 박준규 의장 등 국회의장단과 3당 총무들을 청와대로 초청, 오찬을 함께 하고 있다. 이날 노대통령은 국제수지를 호전시키고 물가를 바로잡는데 가능한 모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연합뉴스




“주택을 짓는 ‘집 대통령’으로 남고 싶다”

1987년 ‘보통사람의 위대한 시대’를 표방하며 대선에서 당선된 노태우 전 대통령이 평소 참모진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한테 했던 말이다. 민주정의당 대선 후보 시절 내세웠던 공약 ‘주택 200만호 공급’에는 이런 노 전 대통령의 생각이 담겼다. 노 전 대통령은 이후 1989년 2월 취임 1주년을 맞아 연 행사에서 서민 대상 영구임대주택 25만가구를 포함해 임기 내 수도권에 90만호, 지방도시에 110만호 총 200만호를 짓겠다는 정책을 공식 발표한다. 노 전 대통령은 당시 행사 연설에서 “보통사람들에게 내 집 마련 꿈을 당장 실현시킬 수 있는 주택 정책을 올해부터 밀고 나가겠다”며 강한 의지를 표명하기도 했다.

분당·일산·중동·평촌·산본 1기 신도시의 탄생


노 전 대통령이 주택 문제에 애착을 보인 이유는 당시 토지와 주택 가격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전두환 정권 동안 강력한 안정화 정책의 영향으로 인해 연평균 10.5%로 비교적 안정이던 지가 상승률은 노태우 정권 출범 첫 해인 1988년 27.5%, 1989년 32%까지 상승했다. 주택 가격 역시 1988년 13.2%, 1989년 14.6%, 1990년 21%로 높은 상승률을 나타냈다. 주택 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은 1989년 2월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 “최근 부동산 가격의 상승으로 국민의 물가 불안 심리를 자극하고 있다. 토지투기현상과 상류층의 아파트 투기에 대해 적절한 대책을 강구, 부동산 투기가 일어나지 않도록 하라”고 지시하기도 했다.

5년 만에 당시 전국 주택 수(640만호)의 3분의 1가량을 추가하겠다는 것은 무리를 넘어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그러나 ‘집 대통령’을 꿈꾼 노 전 대통령은 이 계획을 그대로 밀어 부쳤다. 200만호 건설 사업의 하이라이트는 신도시 건설 사업이었다. 집을 지으려고 보니 서울 시내는 이미 포화상태이고, 그린벨트는 손을 댈 수 없으니 서울 중심에서 20㎞가량 떨어진 그린벨트 너머에 신도시를 건설하자는 대안을 찾은 것이다. 이른바 1기 신도시인 분당과 일산, 중동, 평촌, 산본이 탄생한 배경이다. 1기 신도시는 주거를 포함해 상업과 녹지, 생활 편의시설이 다 갖춰진 자족도시가 목표였다.



노태우 정권은 신도시 건설을 빠르게 진행했다. 1989년 4월 신도시 건설 계획을 발표한 지 7개월 만인 같은 해 11월 분당 시범단지(4,030가구)가 분양됐다. 이어 2년 만인 1991년 9월 분당의 첫 입주가 시작됐고, 1992년부터 평촌(3월), 산본(4월), 일산(8월), 중동(12월) 등이 잇따라 뒤를 이었다. 신도시뿐 아니라 200만호 정책 역시 가속도가 붙을 대로 붙어, 1991년 8월 214만호를 지어 목표치를 추가 달성하며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었던 ‘건설 광풍’은 일단락됐다.

무리한 건설로 부실공사, 토지공개념 도입 논란도


이 같은 주택 ‘물량공세 속도전’은 큰 부작용 역시 낳았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공사가 이뤄지다 보니 건설자재 품귀 현상이 빚어졌고, 각 공사장에서 충분한 품질검사 없이 아무 자재나 끌어쓰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1991년 이른바 불량레미콘, 바닷모래, 불량 철근 파문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탓에 일부 신도시에서는 이미 완공된 아파트를 헐고 다시 짓는 어이없는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다.

1기 신도시들은 당초 목표와는 달리 자족능력이 떨어지는 문제도 있었다. 이들 신도시가 이른바 ‘베드타운’화한 것이다. 신도시가 신규 고용창출이 크지 않은 채 주택공급지로서의 역할에 머무르게 됐다는 지적이 계속 제기됐다. 고용분산을 수반하지 않은 주택의 대량공급은 결국 서울 출퇴근을 위해 신도시 주민이 몰려드는 교통난의 원인이 됐다는 평가도 있다.

노태우 정권은 또 1989년 택지소유상한제, 개발이익환수제, 토지초과이득세 등 이른바 ‘토지공개념 3법’을 도입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투기 억제와 집값 안정을 위해 대규모 ‘물량공세’라는 카드와 동시에 토지공개념을 법제화한 것이다. 이후 헌법재판소는 토지초과이득세와 택지소유상한제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리며 토지공개념 도입 시도를 무력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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